이번 사건(대법원 2024다274398 회장지위부존재확인 등)은 종중 대표자 선임을 종손으로 제한하는 규약의 유효성을 다룬 소송이다. 원고들은 해당 규약이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주장했고, 원심은 종중의 자율성을 이유로 이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종원의 자유로운 대표 선출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로 인해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아 규약을 무효로 판결하였다. 이에 따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다.
1. 사실관계
이번 사건은 종중(宗中)의 대표자를 선임하는 규약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피고 종중은 공동선조의 후손으로 구성된 자연발생적 집단이며, 1961년에 제정된 초기 규약에서 종손(宗孫)을 종중 대표로 지정하였다. 이후 2002년에는 정기총회에서 참석인원의 2/3 이상의 찬성으로 임원을 선출하도록 규약이 변경되었으나, 2013년부터 다시 종손을 당연직 회장으로 규정하는 규약이 시행되었다.
종중의 전임 회장이 사임한 후, 그의 아들이 규약에 따라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나 원고들은 이러한 규약이 무효라며 회장 지위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 당사자 주장
원고 측 주장:
원고들은 해당 규약이 종중 및 종원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되는 양성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종손만이 회장이 될 수 있도록 한 규약은 현대 사회의 평등 이념에 위배되며, 종원의 자유로운 대표 선출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강조하였다.
피고 측 주장:
피고는 종중 규약이 종손의 상징적 지위와 전통을 반영하는 것으로, 종중의 설립 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종중 내에서 종손이 가진 역할을 고려할 때 해당 규약이 정당성을 가진다고 변론하였다.
3. 법원의 판단
1심 및 2심:
원심 법원은 종중의 특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여, 종손을 회장으로 정한 규약이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으며, 규약 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고 해당 규약을 무효로 보았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제시하였다.
- 현대 사회의 법질서와의 충돌:
과거 전통에서 종손이 종중을 대표하는 관습은 존재했으나, 현재는 남녀평등과 개인의 존엄성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회 변화에 비추어 종손만을 회장으로 제한하는 규약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과 자유로운 대표 선출권을 침해한다고 보았다.
- 종원의 권리 침해:
해당 규약은 종손이 아닌 종원이 회장에 입후보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였으며, 특히 여성 종원에게는 성별을 이유로 출마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이는 명백히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선량한 풍속 및 사회질서에 반하는 내용으로 판단되었다.
- 종중의 자율성 한계:
종중이 자율성을 가진 집단이기는 하나, 그 자율성은 종원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처럼 규약이 특정 종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 법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 총회 결의의 무력화:
규약상 종손만이 회장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은 총회의 본래적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켜, 총회 결의를 통해 공정하게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하였다.
4. 결론
대법원은 이러한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수원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 이번 판결은 종중 내 대표자 선출 과정에서 평등권과 자율성의 균형을 중요하게 고려한 결정으로, 앞으로 유사한 사건에 중요한 판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을 통해 종중이라는 전통적 집단 내에서도 현대적 법질서와 헌법적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으며, 종원의 권리 보호와 공정한 의사결정 과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변호사 이두철 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