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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사용한 냉장고 화재로 비닐하우스 안에 보관되어 있던 미술작품이 소실된 경우 냉장고 제조사에게 제조물책임이 아닌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사례 ♡대전 기계소송 변호사♡

이두철변호사 2020. 11. 8. 17:20

1. 기초 사실

 

가. 원고는 1995년 ○○전문대학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조형설치 미술가,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여 오고 있는 사람이고, 피고(=엘지전자 주식회사)는 전기기계 기구의 제작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

 

나. 2009. 12. 14. 12:07경 남양주시에 있는 원고의 부(夫) 소외 1 소유의 비닐하우스(이하 ‘이 사건 비닐하우스’라 한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비닐하우스 파이프조 1동 65㎡ 및 그 안에 있던 농기구와 냉장고(피고가 제조·판매한 것으로서 이하 ‘이 사건 냉장고’라 한다), 세탁기, 전기밥솥 등의 가전제품, 원고가 제작하여 보관 중이던 미술 작품 등이 전소하고, 인접한 컨테이너 1동 27㎡가 부분적으로 소실되었다(이하 ‘이 사건 화재’라 한다).

 

다. 피고는 이 사건 화재 발생 후 남양주소방서와 함께 화재 현장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고, 엘아이지손해보험 주식회사는 피고와의 보험계약에 따라 2010. 5. 13. 소외 1에게 이 사건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보험금 10,000,000원을 지급하였다.

 

 

2. 당사자의 주장

 

가. 원고

 

이 사건 화재는 피고가 제조한 이 사건 냉장고의 과부하 보호장치의 결함으로 인하여 발생하였고, 위 화재로 인하여 이 사건 비닐하우스 내에 있던 원고의 작품이 전부 소실되었으므로, 피고는 이 사건 냉장고의 제조·판매자로서 제조물책임법 또는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의 법리에 따라 원고에게 이 사건 화재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에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화재로 소실된 원고의 미술 작품 144점의 가치 상당액인 147,550,000원 및 원고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중견작가로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의 소실로 인하여 받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50,000,000원 합계 197,55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한다.

 

나. 피고

 

1) 화재증명원(갑 제2호증)에는 화재원인으로 ‘전기-트래킹에 의한 단락 추정’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이 사건 화재가 냉장고의 과부하 보호장치 등 내부 장치의 결함으로 인한 전기-트래킹에 의한 단락인지 아니면 원고 측의 사용상 과실에 의하여 발생한 것인지 객관적 자료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

 

2) 이 사건 냉장고는 1998년도에 생산된 제품으로서 그 내구연한은 제품구입일로부터 7년이며, 2009. 12.경까지 11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되었고, 이 사건 화재는 앞서 본 내구연한이 경과된 이후에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이 사건 냉장고는 제조 당시의 기술 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춘 것으로서 제품 자체에 어떠한 하자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3) 원고와 소외 1은 정해진 설치조건과 용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일반 주택에서 이 사건 냉장고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위 냉장고를 불량한 전기배선, 습기와 온도의 변화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 야생동물에 의한 제품 훼손의 가능성이 있는 이 사건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하다가 이 사건 화재를 당하였다. 나아가 원고와 소외 1은 이 사건 냉장고를 별다른 조치 없이 이 사건 비닐하우스의 맨 흙바닥에 나무를 깔고 그 위에 냉장고를 설치하여 장기간 사용하여 왔다. 또한 원고와 소외 1은 위와 같이 열악한 환경하에서 이 사건 냉장고를 장기간 사용하면서도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 한번도 안전점검이나 사후점검서비스(A/S)를 받지 아니하였고, 이 사건 냉장고를 주기적으로 청소·관리하지 아니하여 냉장고 뒷면에 먼지와 이물질이 쌓이도록 방치함으로써 전기 트래킹의 발생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원고와 소외 1이 이 사건 냉장고를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

 

4) 이 사건 화재 발생 당시 이 사건 비닐하우스 내에 원고가 주장하는 작품 144점이 모두 보관되어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또한 원고의 소득수준이나 재산 정도, 제1심법원의 감정인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등에 비추어 원고 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미미하다고 보아야 한다.

 

 

3. 법원의 판단

 

가.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1) 제조물책임법에 의한 책임 인정 여부

 

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제조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엄격책임으로서의 제조물책임은 제조물책임법(2000. 1. 12. 법률 제6109호로 제정되어 2002. 7. 1. 시행된 것)에서 새로이 도입되었고 같은 법 부칙 규정에 의하여 2002. 7. 1. 이후 제조업자가 최초로 공급한 제조물부터 적용되는 것이어서(대법원 2003. 9. 5. 선고 2002다17333 판결 참조),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제조물책임법에 기한 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이 사건 냉장고가 2002. 7. 1. 이후에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야 한다.

 

나) 원고는 소외 1이 이 사건 냉장고를 2003년경 신품으로 구매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오히려 원고의 남동생 소외 2는 자신이 이 사건 냉장고를 구매하여 사용하다가 이 사건 비닐하우스에 옮겨 설치하였다고 진술한 점, 이 사건 냉장고의 도어 손잡이는 피고의 1998년도 제조 모델과 같이 타원형 모양으로 되어 있고, 피고의 1999년도 제조 모델부터는 전면부 디스플레이가 있음에도 이 사건 냉장고에는 전면부 디스플레이가 없는 점, 이 사건 냉장고에서는 기계식 모델에만 사용되는 부품인 Bracket Timer가 발견된 점(피고는 1999년경부터 PCB를 사용하는 전자식 모델의 냉장고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건 냉장고는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되기 전인 1998년경 제조되었고, 소외 2가 위 냉장고를 구매하여 사용하다가 이후에 이 사건 비닐하우스로 옮겨와 소외 1이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 냉장고가 2002. 7. 1. 이후에 공급된 제조물에 해당하여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되는 것임을 전제로 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가) 관련 법리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에 성능 미달 등의 하자가 있어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제조업자 측에게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책임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일반 소비자로서는 그 제품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하자가 존재하였는지, 발생한 손해가 그 하자로 인한 것인지를 과학적·기술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소비자 측으로서는 그 제품이 통상적으로 지녀야 할 품질이나 요구되는 성능 또는 효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등 일응 그 제품에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사실 제품이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되었음에도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업자 측에서 그 손해가 제품의 하자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그 제품에 하자가 존재하고 그 하자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다(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다16771 판결,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88870 판결 등 참조).

 

나) 판단

 

(1) 원고와 소외 1이 이 사건 냉장고를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하였음에도 이 사건 냉장고의 부품상의 결함과 전기 트래킹(전자제품에 묻어 있는 수분이 섞인 먼지 등에 전류가 흘러 주변의 절연물질을 탄화시키고 오랫동안 탄화가 계속되면 이 부분에 약한 전류가 흘러 발화하는 현상)의 발생이 원인이 되어 이 사건 냉장고 내부에서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이로부터 이 사건 냉장고에 하자가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으며, 원고는 위 화재로 인하여 이 사건 비닐하우스에 보관하고 있던 미술 작품이 전소되는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이 사건 냉장고의 제조업자로서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가) 남양주소방서는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2009. 12. 14. 12:07경부터 그 다음 날 16:10경까지 이 사건 화재 현장을 조사한 결과 ‘소외 1이 이 사건 비닐하우스 지붕에서 불길이 솟았다고 진술하였고, 이 사건 냉장고 하부 안의 서리제거 기동릴레이 상부에 화재 초기에 나타나는 산화흔이 관찰되고, 위 기동릴레이 단자판에서 트래킹에 의한 용융, 용단이 식별되며, 기동릴레이 하부 바닥에 있는 목재 합판이 상대적으로 심하게 소훼되고 천공된 상태이고, 이 사건 냉장고의 하부에 연소 형태의 철판의 수열 변색, 경계흔이 보일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냉장고의 하부 안에서 용융된 냉장고 배선의 접속구와 도체가 발견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이 사건 화재는 이 사건 냉장고의 기동릴레이에서 트래킹이 발생, 기동릴레이 단자판과 접점이 용융, 용단되면서 냉장고 내부에서 발화, 주변에 보관된 물품으로 연소 진행되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나) 소비자들로서는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상시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사용되는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고, 냉장고에서 전기 트래킹 등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사례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볼 자료도 없어서 제조업자들로부터 내부 부품의 위험성이나 안전성에 대한 설명 등이 없는 한 제품의 안전성이나 결함 여부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우며, 그 사용설명서 등에 의하더라도 이에 대한 설명이나 위험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다) 원고와 소외 1은 이 사건 비닐하우스를 주로 창고로 사용하였으나 그중 일부를 구획하여 바닥에 마루를 깔고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용 공간처럼 만들고, 이 사건 냉장고는 이러한 주거용 공간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이 사건 비닐하우스를 작물이 재배되는 일반적 비닐하우스와 동일·유사한 환경으로 볼 수는 없다).

 

(라) 이 사건 화재 이후의 현장 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와 소외 1은 이 사건 냉장고에 음식물을 보관하는 등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고, 위 냉장고를 다른 용도 등으로 사용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

 

(2) 피고의 주장에 관한 판단

 

(가) 내구연한 경과 주장에 대하여

 

소비자분쟁해결기준 제3조 및 [별표 Ⅳ] 품목별 내용연수표에서 냉장고의 내용연수를 7년으로 정하고 있는 사실은 인정되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 발생한 분쟁이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합의 또는 권고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고시에 불과하여 위 기간이 경과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피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냉장고의 내구연한이 7년이고 이 사건 화재가 위 내구연한이 지난 지 4년여가 경과한 이후에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제품의 내구연한은 당해 제품이 본래의 용도에 따라 정상적으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고(LG 싱싱냉장고에 관한 사용설명서인 을 제1호증에서도 권장안전 사용기간을 7년으로 명시하면서 “권장안전 사용기간을 초과하여 사용 시 사용환경 및 제품노후로 인하여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권장안전 사용기간 내에 안전점검을 받으시길 권장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일반 소비자에게 널리 보급된 대표적 가전제품인 냉장고는 제조자가 설정한 권장안전 사용기간이나 내구연한이 다소 경과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소비자의 신체나 재산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으로는 여겨지지 아니하므로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제조업자로서는 그 내구연한이 다소 경과된 이후에도 정상적인 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경우 제품의 위험한 성상에 의하여 소비자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그 설계 및 제조과정에서 안전성을 확보해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 할 것이어서, 이 사건 냉장고가 비록 그 내구연한이 4년 정도 초과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그 정상적인 이용 상황하에서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였고 다른 원인으로 인한 화재 발생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이 사건 냉장고의 하자로 위 화재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나) 이 사건 냉장고의 자체적 결함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화재는 이 사건 냉장고의 부품상의 결함과 전기 트래킹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달리 다른 원인으로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의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다) 정상적인 용법에 따른 사용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원고 및 소외 1이 이 사건 비닐하우스를 주거용 공간 내지 창고로 사용하면서 그 공간 내에 냉장고를 설치한 것에 관하여 이를 정상적인 용법에서 벗어난 사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가사 비닐하우스가 일반 가정주택보다 온도 및 습도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이러한 환경에서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전기 트래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화재 발생의 염려가 높다면, 제조자인 피고로서는 사전에 소비자에게 그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고지하여야 한다고 봄이 상당한데, 피고가 이 사건 냉장고를 제조하여 유통시킬 당시 이러한 위험성에 관하여 소비자에게 설명, 고지하거나 경고를 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을 제1호증의 기재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자료가 없다. 한편 원고와 소외 1이 10년 넘게 이 사건 냉장고를 사용하면서도 안전점검이나 사후점검서비스를 받지 아니하고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고 측의 과실이나 책임제한사유로 평가할 수 있을 뿐 이를 두고 정상적인 용법을 벗어난 사용으로서 피고의 책임 자체를 면하게 하는 사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피고의 이 부분 주장 또한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1) 원고의 손해액

 

가) 재산상 손해

 

(1)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이 사건 비닐하우스 내에 보관되어 있던 원고의 작품들이 전소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나, 원고가 소실되었다고 주장하는 해당 작품(원고가 주장하는 피해 작품은 ① 2002년도 ‘프린지 페스티벌’ 전시 작품 6점, ② 2004년도 신한은행 사내회보 표지에 사용한 작품 17점, ③ 2005년도 웅진 사외보 표지에 사용한 작품 20점, ④ 2005년도 ‘미술이랑 놀기’ 전시 작품 1점, ⑤ 2006년도 웅진싱크빅 ‘타임캡슐 우리의 역사’ 작품 40점, ⑥ 2006년도 금난새의 오페라 하우스 ‘베버의 마탄의 사수’ 작품 54점, ⑦ 2009년도 ‘도토리 삼형제 안녕하세요’ 작품 1점, ⑧ 서울 N-Tower를 위한 문화상품 석고틀 1점, ⑨ 2004년도 개인전 ‘바람부는 날, 날아오르기’ 작품 4점, 총 144점이다)이 모두 이 사건 비닐하우스 내에 보관되어 있었는지에 관하여는 정확히 알기 어렵고, 원고가 제출한 갑 제3, 5호증의 각 기재는 원고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목록이어서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또한 갑 제8 내지 15, 24, 27호증의 각 기재 및 제1심 증인 소외 3의 증언은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이 사건 비닐하우스에 원고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에 지나지 아니하여 이 사건 화재로 인한 원고의 손해액 산정을 위한 증거로서 충분하지 않다.

 

한편 제1심 감정인 서울미술품감정협회의 감정 결과, 제1심법원의 서울미술품감정협회에 대한 각 사실조회 결과에 의하면, 서울미술품감정협회는 원고가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다고 주장하는 144점의 작품에 대하여 원고가 제출한 사진을 통하여 감정한 결과 그 가치가 합계 90,550,000원에 달한다고 평가한 사실과 위 협회는 제1심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하여 작품성, 작가의 이력 및 경력, 사회적 인지도, 작품 보관상태, 현 미술 시장에서의 유통가격 등을 기준으로 감정하되, 해당 분야의 권위 있는 감정위원을 선정한 후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감정가를 산출하고 있고, 전문감정인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감정대상물의 실물을 보지 않고도 감정 및 작품거래를 할 수 있다고 회신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제1심법원의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 및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에 대한 각 사실조회 결과에 의하면, 위 각 협회는 감정대상물의 실물을 보지 않은 채 사진만으로는 미술품에 대한 감정을 실시할 수 없다는 취지로 회신한 사실이 인정되고, 앞서 든 각 증거들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비추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원고가 제작한 작품들은 대부분 한지와 철사 등을 이용한 입체물로서 작품 크기나 작품의 보관상태 등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 할 것인데, 원고가 제출한 사진만으로는 각 작품이 원고가 주장하는 정도의 크기 내지 규모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고, 이 사건 화재 발생 당시 사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설령 원고가 주장하는 144점의 작품이 모두 이 사건 화재로 소실되었다 하더라도 그 가치가 위 감정 결과와 같이 90,550,000원에 달한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2)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재산적 손해의 발생 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곤란한 경우, 법원은 증거조사의 결과와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밝혀진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불법행위와 그로 인한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게 된 경위, 손해의 성격, 손해가 발생한 이후의 여러 정황 등 관련된 모든 간접사실들을 종합하여 손해의 액수를 판단할 수 있고, 이러한 법리는 자유심증주의하에서 손해의 발생 사실은 입증되었으나 사안의 성질상 손해액에 대한 입증이 곤란한 경우 증명도·심증도를 경감함으로써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을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과 기능을 실현하고자 함에 그 취지가 있는 것이지, 법관에게 손해액의 산정에 관한 자유재량을 부여한 것은 아니므로, 법원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구체적 손해액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손해액 산정의 근거가 되는 간접사실들의 탐색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그와 같이 탐색해 낸 간접사실들을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객관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6다64627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으로 돌아와 보건대,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면 이 사건 화재 현장에는 원고의 작품 뼈대로 보이는 철사 등의 잔해가 다수 발견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 사건 화재 현장 사진들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원고가 보관하고 있던 작품들이 소실되는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작품이 원고의 주장대로 144점인지 여부, 작품의 완성 정도나 보관상태 및 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내지 현저히 곤란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법원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제반 사정들을 종합하여 손해의 액수를 판단할 수밖에 없고, 결국 원고가 입은 손해는 50,000,000원 상당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가) 원고는 대학 졸업 후 이 사건 화재 발생 당시까지 약 14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여 오면서 개인 또는 그룹으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펴내기도 한 중견작가로서 상당한 경력과 명성을 쌓아왔다. 원고의 작품에 대한 거래 사례가 거의 없어 그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시장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나, 갑 제22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① 2008년도에 제작하여 ‘사랑 특유 전’에 전시되었던 크기 50× 50×15㎝의 작품은 300,000원에, ② 2007년도에 제작하여 ‘The Open Door 전’에 전시되었던 크기 29×19×5㎝의 작품은 200,000원에, 크기 70×36×30㎝의 작품은 500,000원에 각 거래된 것으로 보인다.

 

(나) 원고는 2012년경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위 전시회에서 전시된 작품 21점에 대한 보험가입 견적서에 원고의 작품을 주제별로 7개의 군으로 분류하여(하나의 작품군에는 3~4개의 작품이 합쳐져 있다), 각 작품군별로 1,500,000원 내지 2,000,000원의 보험가액이 책정되어 이를 기초로 총 15,150,000원의 보험료가 산출된 바 있다.

 

(다) 원고가 제작한 작품들은 주로 한지와 철사 등을 이용하여 사람 또는 사물을 표현한 입체물로서 그 작품 자체를 전시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만, 작품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출판물에 삽입하거나 작품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등의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데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작품들이 모두 소실됨으로써 향후 작품을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라) 그러나 원고가 이 사건 비닐하우스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작품들 대부분은 2002년경부터 2006년경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갑 제3호증의 138번 작품만 2009년에 제작된 것으로 되어 있다), 작품 제작 이후 이 사건 화재 발생 시까지 보관되어 오는 동안 어느 정도 그 상태가 저하되었거나 일부 훼손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특히 2002년도 ‘프린지 페스티벌’ 전시 작품 6점과 2004년도의 개인전 ‘바람 부는 날, 날아오르기’ 작품 4점, 2005년도 ‘미술이랑 놀기’ 전시 작품 1점 등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특정 기업의 회보나 잡지, 만화 양장본 제작 등의 특정 목적을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바, 위 작품들이 예술작품 거래계에서 통상적으로 거래될 수 있다거나 다른 목적으로 다시 활용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나) 정신적 손해

 

일반적으로 타인의 불법행위 등에 의하여 재산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그 재산적 손해의 배상에 의하여 정신적 고통도 회복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재산적 손해의 배상에 의하여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이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가해자가 그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대법원 2004. 3. 18. 선고 2001다82507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원고가 이 사건 화재로 인하여 입게 된 앞서 인정된 재산적 손해배상 외에 자신이 만든 작품을 잃게 됨으로써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기 위하여서는, 피고가 이 사건 냉장고 부근에 예술작품이 보관되어 있고 이 사건 냉장고에 화재가 발생하면 이로 인하여 위 작품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증명되어야 할 것인데,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이 부분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2) 책임의 제한

 

원고와 소외 1이 이 사건 냉장고를 사용한 기간이 10년이 넘고 이와 같이 장기간 사용하면서도 안전점검을 받거나 사후점검서비스를 받았다는 자료를 찾기 어려운 점, 이 사건 화재의 발화원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 냉장고의 하단 부분이 완전히 막혀 있지는 않아 청소 등의 관리가 불가능하였던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하는 점, 이 사건 냉장고가 설치되어 있던 이 사건 비닐하우스는 일반적인 주택에 비하여 습도나 먼지 등에 더 노출되어 전기 트래킹의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인 점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과 손해분담에 관한 공평의 원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피고의 배상책임은 70%로 제한함이 타당하다.

 

3) 소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35,000,000원(= 50,000,000원 × 70%)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2009. 12. 14.부터 피고가 그 이행의무의 존재 여부와 범위에 관하여 항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당심판결 선고일인 2015. 6. 4.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참조판례]

서울고등법원 2015. 6. 4. 선고 2013나2023677 판결

 

 

[변호사 이두철]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고, 원자력발전소에서 기계엔지니어로 14년간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대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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