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부루스(소송이야기)

사망자 명의 가등기 말소 청구 사건

이두철변호사 2019. 5. 30. 22:06

. 사건의 개요

K2000. 9. 23.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K(이하 망인이라 합니다)는 사망 전 1998. 10. 31. 원고 소유 부동산(토지+건물)(이하 이 사건 부동산’)에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를 경료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망인 사망 후 마땅히 상속인이 없었습니다. 원고는 망인의 상속인이 없어 수차례 가등기말소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취하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원고는 망인 사망 후 18년이나 지난 2018. 5.경 또다시 같은 소송을 제기한 후 망인의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을 법원에 청구하였고(법원예납금 200만원 소요),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여 필자를 망인의 상속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하였습니다. 이어서 원고는 피고를 상속재산관리인으로 경정해 달라는 청구를 하였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사자가 확정되어 소송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원고의 주장

원고의 소장 주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원고는 망인의 생모이다. 그러나 호적에 망인의 친자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다. 망인과 원고 사이 무슨 정상적인 금전거래가 있어서 이 사건 가등기가 경료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순히 망인이 이 사건 가등기를 경료해 놓은 것이므로, 망인과 원고 사이 아무런 채권채무가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가등기는 말소되어야 한다.

이 사건 가등기 설정 이후 10년이 넘었으므로 이 사건 가등기가 보전하는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매매예약 완결권은 일종의 형성권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그 행사기간을 약정한 때에는 그 기간 내에, 그러한 약정이 없는 때에는 그 예약이 성립한 때로부터 10년 내에 이를 행사하여야 하고, 그 기간을 지난 때에는 그 매매예약 완결권은 제척기간의 경과로 소멸하는 것이므로(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26425 판결 등), 이 사건의 경우 매매예약 완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 피고(상속재산관리인)의 답변

상속재산관리인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변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청구취지에 대한 답변

 

1.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청구원인에 대한 답변

 

1. 가등기의 원인행위 무효, 부존재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원고와 망인 사이 아무런 채권채무관계가 없으면서도 망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사건 가등기를 경료해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형식상 적법한 등기가 등기부에 등재된 이상, 그것은 진실한 권리상태를 공시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 결과 등기사실의 진실성을 부인하려는 자가 그에 대한 증명책임을 집니다(대법원 1979. 6. 26. 선고 79741 판결 등).

원고는 원인무효를 주장하나 그것에 대한 입증은 전혀 없습니다. 원고가 증명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 이 사건 가등기의 추정력은 복멸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2. 원인채권 소멸시효 완성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이 사건 가등기의 매매예약 계약일이 1998. 12. 29.이며, 접수일이 1998. 12. 30.로 약 19년이 경과하여 가등기설정 이후 10년이 훨씬 넘었으므로 가등기가 보전하는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상속재산에 속한 권리나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는 상속인의 확정, 관리인의 선임 또는 파산선고가 있는 때로부터 6월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합니다(민법 제181).

피고는 2019. 3. 4. 대전가정법원 2018느단00호 사건으로 망인의 상속재산관리인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원고의 주장처럼 그동안 망인의 상속인이 확정되지 않았다가 원고의 청구로 위 상속재산관리인 선임결정이 있었습니다.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결정이 있은 때로부터 6개월이 도과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등기가 보전하는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었습니다.

 

3. 매매예약 완결권 제척기간 10년 도과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매매예약 완결권은 일종의 형성권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그 행사기간을 약정한 때에는 그 기간 내에, 그러한 약정이 없는 때에는 그 예약이 성립한 때로부터 10년 내에 이를 행사하여야 하고, 그 기간을 지난 때에는 그 매매예약 완결권은 제척기간의 경과로 소멸한다고 주장합니다.

우선, 이 사건 가등기가 채권 담보목적으로 설정된 가등기라면, 채권이 소멸되지 않는 한 가등기도 소멸되지 않습니다. 채권의 소멸시효에 관하여는 앞서 2.항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6개월간 시효정지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담보가등기라고 본다면, 매매예약 완결권은 논의될 여지가 없고, 매매예약 완결권의 제척기간 역시 논의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사건 가등기가 담보목적 가등기인지 아니면 순위보전 가등기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매매예약 계약서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망인과 사이에 작성된 해당 매매예약의 계약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필요시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겠습니다)

이 사건 가등기가 본등기 순위보전을 위한 등기라면, 매매예약 완결권 제척기간 도과의 주장은 가능하겠으나, 이 또한 소멸시효 정지규정 유추적용 또는 신의칙 및 권리남용금지 원칙에 의해 인정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민법은 소멸시효 중단이나 정지에 관하여만 일반 규정을 두고 있을뿐 제척기간에 관하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논거들에 의하면 제척기간에 소멸시효의 정지 규정(179 내지 182)을 유추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다만, 제척기간에 민법상 소멸시효 정지에 관한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명확한 판례는 보이지 않습니다). 첫째, 만일 제척기간의 만료 직전에 그 권리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사정이 생긴 경우에 대해서까지 유예기간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이는 권리자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둘째, 소멸시효의 정지제도에 의한 유예기간은 비교적 단기로 한정되어 있는 결과 제척기간의 정지를 인정하더라도 권리관계를 신속히 확정하려는 제척기간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셋째, 정지제도는 시효완성을 일시적으로 유예할 뿐인 예외적인 제도로서 그 사유는 네 가지로 한정되어 있고(민법 제179 내지 182), 그 점에서 법적 안정성을 해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넷째, 제척기간을 출소기간으로 해석할 경우, 법정대리인이 없는 행위무능력자나 상속인 부존재의 경우에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자 혹은 천재사변에 의한 재판업무의 중지로 인하여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자에 대하여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되어 부당합니다.

한편 판례는 신의칙 및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 의해 소멸시효의 항변을 배척합니다. , 대법원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66969 판결)”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제척기간의 항변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다만, 신의칙 및 권리남용금지 원칙을 적용하여 제척기간의 항변을 배척할 수 있다는 판례는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1998. 12. 29.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하여 이 사건 가등기가 경료되었고, 망인은 2000. 9. 23. 사망하였으므로, 망인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매매예약 완결권을 행사할 시간이 8년 이상 남았던 점, 원고는 2004. 5. 1. 대전지방법원 2004가단00000호로 가등기말소의 소를 제기하였으나 2004. 10. 2. 각하되었으므로(을 제1호증, 갑 제1호증의 1, 2), 원고는 늦어도 2004.경에는 위 가등기말소 소송을 통하여 망인의 상속인이 없는 사실(원고는 망인이 자신의 생모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 원고는 1991. 10. 31. 접수 제00000호로 이 사건 부동산의 소유권을 망인으로부터 이전받은 사실이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원고는 망인에게 상속인이 없다는 사실을 망인 사망 이전부터 알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및 가등기말소 소송을 위하여는 먼저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는 2004년 이후 언제든지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을 청구하고 또다시 가등기말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을 기다렸다가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가등기말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제척기간 도과를 주장하고 있는 점, 망인 사망 후 상속인이 없었으며 상속재산관리인이 선임되지도 않았으므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던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할 때, 원고가 매매예약 완결권 제척기간 도과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습니다.

 

4. 결 어

원고의 주장은 모두 타당하지 않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피고는 보존행위로서 6개월이 지나기 전에 매매예약 완결권을 행사하여야 합니다. 매매예약 완결권 행사 후 매매의 효력이 발생함으로써, 피고는 매매예약 계약서에 명시된 매수인의 의무, , 매매대금 지급 등의 의무를 부담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고와 망인 사이 매매예약 계약서를 확인한 후, 피고가 본등기를 위하여 부담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상호 적절히 합의할 여지는 있다고 사료됩니다.

 

. 법원의 화해권고결정

변론기일 후,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

, 원고는 1998년 이 사건 가등기 당시 작성된 매매예약 계약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고 역시 그러하며, 시간이 오래 지나 달리 매매예약 계약서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점, 피고는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이 있는 때로부터 6개월 이내에 보존행위로서 매매예약 완결권을 행사하여야 할 것이나, 막상 매매예약 완결권을 행사한 후 통상의 경우 수반되는 매매대금 지급, 부동산 인도 및 소유권이전등기 조건 등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의 경우 매매예약 완결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본등기 이행이 어려운 점, 제척기간 정지에 관하여 소멸시효 정지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는 판례가 없고, 또한 제척기간 도과 주장이 소멸시효의 경우처럼 신의칙 및 권리남용금지 원칙에 의해 배척될 수 있다는 판례도 없는바, 이 사건 매매예약 완결권 행사의 제척기간이 도과하였다는 주장이 당연히 배척된다고 볼 수 없는 점, 원고는 출생당시 불우한 상황에서 호적에 올려지지 못하였을 뿐 자신이 망인의 친자임이 틀림없으며, 망인이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근거리에서 망인을 보살폈다고 주장하는바,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원고가 특별연고자로서 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분여 받을 가능성도 있는 점(민법 제1057조의 2), 어느 누구도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재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방치하는 것 보다 합리적인 선에서 권리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타당하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는 원고로부터 1,000,000원을 지급받은 다음 원고에게 이 사건 가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을 하였습니다.

이에 원피고 모두 이의하지 않아 위 화해권고결정은 그대로 확정되었고, 그렇게 소송은 종결되었습니다.

. 소송후기

이 사건의 경우, 원고 입장에서 당사자가 사망하여 소송 수행이 어려웠고, 시간이 오래 되어 가등기말소원인을 입증할 방법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 매매예약완결권이라는 형성권의 행사기간, , 제척기간 도과를 주장하기에는 유리하였습니다. 이 사건과 유사한 상태에 있는 분들은 가등기 후 10년이 넘기를 기다렸다가 소송을 제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필자는 이 사건 소송을 통하여 제척기간 정지 또는 신의칙 항변에 관하여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보람된 소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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