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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미수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한 권리 행사로 볼 수 있는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 : 성폭력 피해자가 하는 합의금 요구의 정당성 인정

이두철변호사 2025. 2. 2. 21:09

사건 개요

대법원(2024도3794)은 공갈미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준강간상해죄로 고소하기 전 합의금을 요구하며 협박성 발언을 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공갈죄의 해악의 고지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이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합의금 요구가 정당한 권리 행사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검사가 공갈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유죄 판단은 무죄추정 원칙 및 증거재판주의에 위배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사실관계

피고인은 피해자와 지인 관계로, 2021년 9월 14일 평택시 소재 모텔에서 함께 투숙하였습니다. 이후 9월 21일, 피고인은 피해자를 준강간상해죄로 경찰에 고소했으나, 수사 결과 혐의없음(불송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위 고소를 제기하기 전인 9월 17일, 자신이 운영하는 호프집에서 피해자를 만나 "합의금 5,000만 원을 주면 사건을 조용히 끝내겠다. 합의금을 안 주면 내 남자친구(공소외 1)가 너를 어떻게 할지 모른다. 그는 칼을 품고 다니며, 술을 마시면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협박하여 금전을 요구한 행위가 공갈미수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기소하였으며, 1심과 2심 법원은 이를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원심(1심과 2심)의 판단

원심 법원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피고인에게 공갈미수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가. 피고인의 발언이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협박

  •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남자친구(공소외 1)의 폭력성을 강조하며 협박성 발언을 한 점.
  • 피해자가 피고인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피고인이 준강간상해죄로 고소한 점.

나. CCTV 영상 및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인정

  • 사건 당일 모텔로 들어가는 CCTV 영상에서 피고인이 만취 상태가 아니었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허리를 감싸는 모습이 포착됨.
  • 피해자가 준강제추행 혐의를 부인하는 등 일관된 진술을 유지한 점.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하였습니다. 주요 판단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공갈죄에서 '해악의 고지'에 대한 법리 오해

대법원은 공갈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한 권리 실현의 범위를 넘어섰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 피고인은 실제로 피해자를 준강간상해죄로 고소하였고, 이는 피해자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 따라서 피고인이 합의금을 요구하며 한 발언이 정당한 권리 실현의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이를 넘어서 부당한 협박에 해당하는 것인지 명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나. 증거 부족 및 합리적 의심의 원칙 위배

  • 피고인의 고소 사건이 불송치 처분을 받았지만, 이는 단순히 증거 부족에 따른 것이며, 피고인의 고소 내용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원심이 논리와 경험칙에 반하는 판단을 하였고, 피고인의 주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요구한 행위가 반드시 공갈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으며, 공소외 1의 폭력성 언급도 완전히 근거 없는 발언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 무죄추정 원칙 및 검사의 증명책임

  • 형사사건에서는 유죄를 입증할 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며, 피고인이 무죄임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 피고인의 발언이 공갈죄의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확신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 판단은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결론 및 시사점

대법원은 "공갈미수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한 권리 행사로 볼 수 있는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원심 판단의 법리적 오류를 지적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공갈죄에서 '해악의 고지'가 성립하려면 단순한 협상이나 합의금 요구를 넘어서 부당한 위협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형사재판에서 검사의 증명책임을 강조하며, 피고인의 주장과 제출된 증거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본 사건은 단순한 협박과 정당한 권리 행사 간의 경계를 구별하는 법적 기준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에필로그] 대법원 판결 후 피고인의 전화 통화

등장인물

  • 피고인(가명 김지윤, 30대 여성): 공갈미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대법원에서 원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은 인물
  • 지인(가명 박수진, 30대 여성): 피고인의 오랜 친구이자 조언자

(피고인의 집, 밤늦은 시간, 김지윤이 거실 소파에 웅크린 채 앉아 있다. 긴장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한숨을 쉰 뒤 전화를 건다.)

김지윤: (전화 연결음 후) 수진아…

박수진: 지윤아! 판결 나왔다며? 어떻게 됐어?

김지윤: 대법원에서 원심 깨고 다시 심리하라고 했어.

박수진: 뭐? 그럼 아직 끝난 건 아니네?

김지윤: 응, 하지만 유죄가 확정된 건 아니야. 변호사 말로는, 이번 판결 덕분에 다시 제대로 따져볼 기회가 생긴 거라고 하더라.

박수진: 그래도 다행이다… 너 진짜 너무 억울했잖아.

김지윤: 그러게… 처음엔 그냥 얼떨떨했어.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유죄 판결까지 나니까 진짜 미쳐버릴 것 같더라.

박수진: 근데 너 그때 왜 합의금 얘기한 거야? 그게 발단이 된 거 아니야?

김지윤: 나도 그 생각 많이 했어… 하지만 그때 난 정말 피해자라고 생각했고, 이 사람한테 제대로 사과라도 받고 싶었어. 근데 갑자기 내가 협박범이 돼버리니까…

박수진: 너무 억울했겠다…

김지윤: 대법원에서도 그 부분을 인정한 거지. 내가 정말로 성폭력 피해자라고 믿었고, 합의금을 요구한 것도 나름대로 정당한 방법이었다고.

박수진: 그래, 너한테 불리한 증거만으로 유죄를 확정할 순 없지.

김지윤: 그러니까. 대법원에서도 검사가 증명책임을 다 못 했다고 했어. 나한테 불리한 정황만 보고 유죄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박수진: 원심에서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네 말도 제대로 안 듣고…

김지윤: 그러니까. 나한테 불리한 증거만 보고, 내가 했던 말들은 다 무시하고. 그래도 이번에 다시 기회가 생겼으니까, 변호사랑 잘 준비해서 무죄 받아야지.

박수진: 맞아! 이제 다시 시작이야. 너 절대 포기하면 안 돼.

김지윤: 응, 이제 끝까지 싸워볼 거야. 진짜 이 일만 끝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조용히 살고 싶어.

박수진: 그럼 무죄 판결 받으면, 우리 예전에 다니던 카페에서 커피 마시자. 네가 좋아하던 메뉴 그대로 시켜줄게.

김지윤: 진짜? 그날 오면 꼭 아이스 바닐라라떼로!

(전화가 끊기고, 김지윤은 깊은 숨을 들이쉰 뒤 창밖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들이 그녀를 비춘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꼭 쥔다. 다시 싸울 준비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