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비용 담보제공, 어떤 경우에 인정될까?
– 대법원 2025마5518 결정을 중심으로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원고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라는 법원의 명령이 내려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상대방이 외국에 주소를 둔 경우뿐 아니라, 소송의 청구가 명백히 이유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이러한 결정이 가능하다. 최근 대법원은 소송비용 담보제공의 요건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확인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1. 소송비용 담보제공의 법리
민사소송법은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피고의 신청으로 원고에게 소송비용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핵심 요건은 다음과 같다.
● 첫째, 담보제공 사유
다음과 같은 경우 담보제공 명령이 가능하다.
- 원고가 대한민국 내에 주소·사무소·영업소를 두지 않은 경우
- 소장·준비서면 등 소송기록만으로 원고의 청구가 명백히 이유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 그 밖에 담보제공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유가 있는 경우
● 둘째, 시기 제한
피고는 본안에서 변론을 하거나 변론준비기일에서 진술을 한 후에는 담보제공 신청을 할 수 없다.
이는 소송이 상당히 진행된 뒤 뒤늦게 담보제공을 신청함으로써 소송을 지연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 셋째, 상소심에서의 신청
상소심에서도 담보제공 신청은 가능하지만 요건이 까다롭다.
- 제1심 또는 항소심 단계에서 이미 담보제공 사유가 존재했음에도 당사자가 과실 없이 신청할 수 없었음이 소명되어야 하며,
- 또는 상소심에서 새롭게 담보제공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만 신청이 허용된다.
대법원은 여러 판례를 통해 일관되게 이러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2. 사건의 사실관계
해당 사건에서 원고(피신청인 등)는 피고(신청인)를 상대로 배당금 지급 청구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 청구 내용의 변화
- 처음에는 배당금 지급청구권이 있다는 취지로 소를 제기
- 이후 준비서면에서 해당 주장 중 일부를 철회하고,
민법 제35조 또는 제756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으로 청구원인을 정리
● 제1심 판결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해당 회사에 실질적인 배당금 지급 의무가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고,
- 설령 회사 대표자가 이익잉여금을 임의로 처분했다 하더라도
원고들에게 구체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즉,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는 이유 없음이라는 결론이었다.
● 항소 제기 후의 새로운 사정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피고는 원고가 제기한 형사 고소 사건에서
혐의없음 처분(불기소)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근거로 소송비용 담보제공을 신청하였다.
불기소 처분은 원고의 청구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방향과 맞닿아 있어, 피고는 이를 “새로운 담보제공 사유”로 주장한 것이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하급심이 소송비용 담보제공 신청을 인용한 결정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주요 판단은 다음과 같다.
1) 제1심에서는 청구가 명백히 이유 없음이 드러나지 않았다
제1심 기록만으로는 원고 청구가 명백히 이유 없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따라서 피고가 제1심에서 담보제공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 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2) 제1심 판결 이후 또는 항소심에서 담보제공 사유가 새로 발생
- 피고는 제1심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원고 청구의 부당성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 더 나아가 형사사건의 불기소 처분이라는 새로운 사정까지 발생하였다.
- 원고의 청구가 유지될 개연성이 약화되었고, 항소심에서도 소송비용이 계속 발생하면 피고에게 불리하다.
따라서 항소심에서 담보제공 신청을 한 것은 적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3) 원고 측의 재항고는 이유 없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법리 오해가 없고 정당하다고 보았다.
결국 재항고는 기각되었다.
4. 이번 결정의 실무적 의미
● 원고가 청구 내용을 뒤늦게 변경하거나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원고의 주장 구조가 바뀌거나 근거가 약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피고는 항소심 단계에서도 담보제공 신청을 검토할 수 있다.
● 새로운 사정이 발생하면 상소심에서도 담보제공 가능
특히 이번 결정처럼
- 제1심 판결의 판단,
- 관련 형사사건의 불기소 처분 등,
원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전제가 무너진 경우에는
상소심에서도 담보제공 명령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 피고의 방어권 보호가 중요
법원은 피고가 불필요한 소송비용 부담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시점에 담보제공을 명할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는 실무에서 피고가 취할 수 있는 중요한 방어 전략이다.
결론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서
소송비용 담보제공의 요건과 신청 시기를 엄격하게 해석하면서도,
소송 도중 발생한 새로운 사정을 고려해 피고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였다.
소송 상대방의 청구가 근거 없거나 변화가 잦고,
항소심에서 추가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경우에는
담보제공 신청이라는 전략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소송비용 담보제공 제도는 자주 사용되는 절차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활용할 경우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예방하는 중요한 방어 장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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